농업 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문득문득 했던 생각이다
스마트팜이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 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현시점에서 나의 결론은
운이 좋을경우 '남부럽지 않게 먹고사는데 문제없을 만큼' 버는 것은 가능하지만
농사를 지어서 부자가 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 결론이다
(농사짓던 땅이 개발되서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는 제외)
나에게 뚜렷한 산업내 인사이트가 있어서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농가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지런한 농가 대표님들 중 땅값이 올라서 부자가 된 경우를 빼고
순수하게 농업에서 나온 수익으로 강남에 아파트 한채 살만큼 재산을 모으신분을
아직까지 한분도 보지 못했다.
10집중에 7집이 망해나간다는 통닭집 사장님들을 10년간 만났었다면
적어도 그중 몇명은 자기 사업을 제대로 일궈서
외제차에 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분을 만날수 있지 않았을까?
산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산업 포트폴리오는 다른 어떤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캐쉬카우 '반도체','전자','조선','건설'이 여전히 상위티어 건재하게 버티고 있고
차세대 산업인 '인터넷','통신/IT','문화컨텐츠'역시 글로벌 선두그룹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 이후 '의료'분야까지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GDP가 약 2,000조원 가까이 하는 나라에서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산업 생태계가 조성된 나라에서
엄연히 '농산업'이라는 카테고리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존재하고 있지만
매출 1조원을 찍는 민간기업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산업이 바로 농산업이다.
(고작 먹지도 못하는 핸드폰/반도체 따위나 파는 회사 매출은 2020년 기준 230조...)
결론적으로 적어도 현재까지 한국에서 농산업은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업으로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돈이 모이지 않는 산업'은 당연히 성장할 수 없고, 이미 산업이라고 부를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분야라면, 공공의 재원을 투입해 유지시키는
일종의 '공공 서비스'이지 절대 산업이 될수 없다
최근 수년간 농업분야에 엄청난 화두로 떠오르는 '스마트팜'이라는 주제에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수 있는가?'라는 물음부터
농산업은 자립구조의 산업으로써의 역량이 있는가?에서부터 출발 해봐야 할 것같다
1. 농산물은 공공재인가?
혹시 20년전 사과 한박스 가격을 기억하는가?
만약에 기억한다고 해도 그 가격이 '농가수익'과 직결되는 금액은 아니다
당시 열악한 유통환경과 저장기술 취약 등의 영향으로
산지가격 대비 지금에 비해 훨씬 높은 유통 가격으로
최종 소비자가격이 형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확한 농가의 소득액을 추정하려면 '산지가격'이 기준이어야 한다
AT센터 자료 기준 '97년도 사과의 수확직후 수집상 구입가격은
영주의 경우 20kg들이 컨테이너상자당 12,000 ~ 18,000원
상주의 경우 상자당 13,000~20,000원 정도로 형성되었었다.
그리고 '19년도 사과가격은 30,000~50,000원 정도로 집계되어 있다
아마도 정보와 교통 발달의 영향인지 지역별 편차는 거의 없는것 같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약 2.5배 가격이 오른것이다.
같은기간 최저임금의 변동을 보면
'97년 시간당 1,400원 → '19년 8,350
약 6배가 증가했다.
최저임금의 개념이 '노동자가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이 가능한 급여기준'
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아마도 해당기간동안 전반적인 사회의 화폐가치가
약 1/6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나마도 '사과'라는 비교적 돈되는 품목을 비교해서 그렇지
'쌀'같은 경우 산지가격은 80KG 기준
'97년 121,073 → '19년 166,720으로 20년간 거의 변동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품목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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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패턴의 변화때문인지 '97년도는 80키로 기준, '19년도는 20키로 기준으로 가격이 집계되어 있다>
97년도와 가격비교를 하다보면
농산물과 같이 그 기간동안 2.5~3배 정도 인상율이 유지된 품목들이 있다
주로 버스 / 지하철과 같은 생활 밀접형 공공재들이다.
실제 대중교통의 경우 최저 수익이 나지 않는 노선들은 보조금으로 손해를 보전해 가면서
그정도의 가격을 유지하며 운영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농업역시 직불금/보조금등의 형태로 많은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공정무역 조건을 우회하기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사업 또한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한국의 농산업은
국민전체의 복리를 위해서 농민은 공공재인 농산물을 생산하고
국가는 그러한 농민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주면서 농민을 '준공무원'으로
양측이 윈윈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구조...... 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법이다
실제 대다수의 농민은 어마어마한 빚의 늪어서 허덕이고 있고,
농업외 다른일 (일당제 근로, 숙박업, 운수업 등)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2. 대한민국 농민은 착취당하고 있는가?
4년전쯤 후배에게 굉장히 씁쓸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굉장히 장사가 잘되는 모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그 이유가 쉴세없이 포장하고 계산하고 바쁘게 일하는데 사장이 치사하게 '중식대' 같은것을 아끼려고
음식을 2인분 시키고, 가게에 전기밥솥하고 김치 갖다놓고 3명이 먹게하는등
너무 치사하게 사람을 부려먹는다는 이유였다.
'참 해도 너무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같이 공분해 주고 있는데
내가 씁쓸해진 지점은 마지막 후배의 말이었다.
'형 근데 내가 그 사장 통장을 얼핏 봤는데 통장에 마이너스 1억 6천이 찍혀있더라구요'
그렇게 지독스럽게 아끼고 벌어서, 빚잔치 하고나면
실제 겨우겨우 입에 풀칠만 할수 있는 그 약탈적인 프랜차이즈 구조
사실 위에서 나열했던 숫자들을 보고, 농가의 부채현황을 보면 딱 오버랩 되서
농업판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농업인들이여.. 일어나라! 부조리한 구조를 몰아내자!
오케이! 그럼 어떤놈들이 농민들을 착취하고 있는지 그놈을 찾아내서 몰아내면 되겠군!
- 농가가 피땀흘려 가꾼 농산물을 정당한 가치를 보장받지 못하는게 문제다!
- 인건비/재료비 모든것이 가파르게 오르는데 농산물가격만 제자리다!
사실 현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문제 제기이다.
그러면 농산물의 정당한 가치는 어느정도일까?
당연히 생산자 입장에서는 생산원가 베이스로 계산을 해서 산정하겠지만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소비자 효용 가치'를 기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쌀 한가마를 만들어 내는데
누군가는 한땀 한땀 손수 삽질하고 모내기하고 낫질해서 만들어냈고
누군가는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 다고
최종 쌀 한가마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AT센터 21년 1월자료 기준으로 관리품목 수입가와 국내 산지가 1KG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물론 표안의 금액은 수입 원가를 의미하며, 관세나 유통마진등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에 2배이상의 고가를 지불하면서도
'신토불이'라는 신념을 가진 착한 소비자 들이다.
- 그러면 농민에게 마땅히 돌아가야할 이익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유통업자
- 큰 자금력으로 농가의 정당한 댓가를 중간에서 착취하는 유통업자가 나쁜놈들이다!
아마 '농산업'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있을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복잡한 유통구조'의 문제
산지에서는 가격이 안나와 갈아 엎는데, 마트에서는 전과 다름없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을 근거로
농산물 유통업자들은 대표적인 농민 착취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하지만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나) 적어도 내가 알고있는 범위안에서
농산물을 몇백억대 이상으로 유통하는 중급이상의 벤더들
소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메인 유통망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벤더들의 목표 수익율은
꾸준히 수요가 있는 채소류 기준으로 투입금액의 3% 안팎이라고 알고있다.
(물론 유통업자 독점 품목을 계약재배하는 일부 품종의 경우는 훨씬 마진이 높다고 한다)
유통구조가 복잡해서, 여러사람의 손을 타야하는 것은 유통업자의 잘못이 아니다.
사실 그 과정중에 로스가 생기고, 재고가 생기고, 폐기제품이 생기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댓가로
3~4%의 마진은 너무 박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 신선채소/과일은 중량단위로 거래되는데, 유통과정중 상품에 포함된 수분증발 중량만 7~8%라고한다
100키로 사면 92키로밖에 납품하지 못하는거다
그러면 이사람들도 몰아내야하는 적폐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도대체 농민을 착취하는 세력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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